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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시간의 나그네들 3 — 홍해: 추격과 혼란, 그리고 길이 열리다 2025-12-27 10:18
작성자 Level 10

CHAPTER 3 — 홍해: 추격과 혼란, 그리고 길이 열리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이번 바람은 위의 건조한 바람이 아니었다. 코끝을 스치는 짭조름한 냄새였다. 수평선 어딘가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물의 냄새.

“…바다 냄새다.”
철수가 먼저 눈을 떴다. 얼굴을 스치는 것은 모래먼지와 함께 달아오른 공기. 그는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수평선, 앞에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 그리고 위에 뒤엉켜 있는 수많은 사람과 짐승과 짐꾸러미들.

아이 울음, 어른들의 고성, 짐승 울음소리까지 뒤엉켜 있었다. 고요한 광야의 아침이 아니었다.
전쟁 전야 같은 혼란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철수야우리이번엔어디야?”

정동일의 목소리에도 이미 답이 섞여 있었다. 그도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무엇인지, 거의 직감하고 있었다. 철수는 자동적으로 주머니에서 SIMON기기를 꺼냈다. 파란 불빛. 하는 짧은 소리 후에 화면이 켜졌다.

지도가 떴다. 이번에는 산이 아니었다. 커다란 물의 덩어리가 화면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앞쪽 모래벌판에는 수많은 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멀리 뒤쪽, 붉은 점들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화면 상단의 글자가 깜빡였다.


TARGET: EXODUS / RED SEA

홍해…”
동일이 숨을 삼켰다.
정말여기까지 왔네…”

바다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얹혀 있었다.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느냐!”
차라리 애굽에서 노예로 죽는 나았겠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히브리어 비명과 원망이 바닷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이스라엘…”
동일이 중얼거렸다.
우리지금 출애굽 직후야.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그때… B.C. 1,446 정도 되었으려나?”

정확한 연도까지 외는 동일.

마침 순간, 뒤쪽에서 낮고 묵직한 북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철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먼지 구름이 수평선 너머에서 일고 있었다. 그는 SIMON 화면을 확대했다. 붉은 점들이 무더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애굽 병거다.”
철수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가깝다.
속도라면 시간 안에 여기까지 닿겠어.”

동일이 얼굴을 찌푸렸다.
성경에선 사람들이 여기서 엄청 불평하고,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잖아. 근데우리는 여기서 해야 하지?”

철수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는 앞으로 막고 있고, 뒤는 애굽 군대가 덮쳐올 모래벌판.
사방팔방이 막힌 듯한 형세.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도로망, 지형 정보, 병력 이동 속도 등의 숫자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애굽 군대를 느리게 만들 있다면?”
철수가 말했다.

느리게?”
그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어차피 하나님이 하실 거야. 우리는 전까지 사람들이 전멸하지 않게 시간을 조금만 벌어주면 되는 거지.”

동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애굽 군대를 상대로…? 우리 둘이?”

철수는 SIMON 화면을 가리켰다.
우리가 가진 총도 칼도 아니지만,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보야.
적이 어디에 있고, 어느 속도로 움직이는지 보인다, 말이지.”

동일은 잠시 침묵했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어차피 여기까지 이상, 가만히 구경만 하긴 싫다.”

사람은 이스라엘 진영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화낼 시간도 없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텐트 개가 묶여 있는 곳이 보였다. 거기엔 무장을 갖추고 주변을 살피는 남자들이 있었다.

군인 같네.”
철수가 말했다.
지도층일 수도 있어.”

그중 명이 사람을 노려봤다. 피로와 경계심이 짙게 깔린 .

누구냐? 어디서 자들이냐?”

동일이 나섰다.
우리는나그네들입니다. 애굽 군대가 어디쯤 왔는지알고 있습니다.”

남자의 눈이 움찔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철수가 걸음 나섰다.
애굽 군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병거가대략 600. 군사, 2 이상. 지금 속도라면 전에 여기 도착할 거요. 뒤편 서쪽 사막길로 우회하는 부대도 같이 있소.”

말에 주변 남자들이~” 하고 술렁였다. 누군가 는욕설을 내뱉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철수는 SIMON 꺼내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지만, 시대 사람들에게 그건 혼란을 부를 뿐이었다. 그는 대신, 짧게 거짓과 진실 사이를 골라 말했다.
우리는야웨께서 보내신 눈이다.”

야웨라는 말이 떨어지자 남자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여호수아에게 알려야 한다.”
누군가 말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들렸을 , 동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호수아. 모세의 부관. 장차 여리고를 무너뜨릴 장군. 지금 순간엔 단지 무리를 책임진 지도자 사람.

잠시 , 조금 넓은 텐트 쪽에서 서른 후반쯤 되어 보이는 강건한 남자가 나타났다.
단단한 눈매, 군인 특유의 긴장된 어깨. 그러나 눈에는 어딘가 깊은 두려움과 고민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너희가애굽 군대의 위치를 안다는 자들이냐?”
여호수아였다.

철수와 동일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 장군님.”

어떻게 아느냐?”
철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나님께서보여주셨습니다.”

동일이 속으로거짓말 아니냐라고 생각하려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엄밀히 말하면, 거짓은 아니지.
우리가 가진 SIMON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신 도구일 테니까.

여호수아는 잠시 그들을 관찰하다가, 지도를 펴놓은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지금 애굽 군대가 어디쯤인지 말해 보라.”

철수는 SIMON 화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위에 그려진 대충의 지형과 비교했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 그러나 말과 병거를 끌고 오니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엔 도착할 겁니다.”

여호수아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는 앞에 바다가 있다. 뒤에는 병거다. 곳이 없다.”

속에는 신하로서 모세를 따르지만 인간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동일이 조심스레 말했다.
뒤는 우리가조금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동일에게 향했다.

뭐라고?”
애굽 군대가길을 헤매게 있습니다. 속도를 늦추고, 잘못된 길로 유인할 있습니다.
하루, 아니 반나절만 벌어준다면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위한 시간은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수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지금 그는 절박했다.

너희가 진정 여호와께서 보내신 자들이라면…”
그가 낮게 말했다.
우리는너희를 믿겠다.”

말은 정말로 결단이 담긴 한마디였다. 철수와 동일은 작은, 그러나 단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들이 텐트를 나오는 순간, 철수는 군중의 고성과 원망이 자연스러운 분노 이상으로 기묘하게 증폭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사람들 마음속에 불을 번씩 던져 넣는 것처럼. 어떤 남자가, 원망을 외치던 갑자기 소리쳤다.

모세가 우리를 팔아넘겼다!”

말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너무 자극적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마디에 휘청했다.
불평이 폭발로 바뀌는 , 언제나 문장에서 시작된다.

동일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순간, 검은 그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 보였다.

동일은 숨을 삼켰다.
철수야…”
나도 봤어.”

철수가 낮게 말했다.
“…
같아.”

 

광야의 저녁은 빠르게 다가왔다. 해가 기울어갈수록 그림자는 길어졌고, 공기는 뜨겁고도 서늘했다.

붉은 먼지구름이 지평선에서 일어났다. 애굽군이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병거, 갑옷을 입은 병사들, 높이 치켜든 . 그들의 얼굴에는 사냥감을 앞둔 맹수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놈들생각보다 빠르다.”
철수가 이를 악물었다. SIMON 화면에서는 붉은 점들이 연속적인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동일아.”
.”
우리 계획대로 가자.”

사람은 우회로를 따라 달렸다. 이스라엘 진영보다 뒤쪽, 애굽군이 지나갈 만한 협곡과 갈림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여기서 어쩌려고?”
동일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진짜 길이 어딘지는 우리만 알고 있는 좋겠지.”

그는 SIMON 지형을 확인했다. 사막의 완만한 경사, 언덕과 협곡의 위치. 그리고 애굽군이 이동 중인 주요 도로처럼 보이는 .

애굽군이 이쪽으로 다이렉트로 오면 이스라엘 진영까지 직선이다.
근데, 여기이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네.”

철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좁은 협곡이 있었다. 들어가면 되돌아나오기 어려운 형태의 지형.

우리가흔적을 남기는 거야.”
철수의 눈이 번뜩였다.
이스라엘이 이쪽으로 도망간 것처럼 보이게.”

그들은 급히 움직였다. 모래 위에 발자국을 일부러 크게 남겼다. 쓰러진 나뭇가지를 끌고 지나가 마치 많은 인원이 다녀간 것처럼 흔적을 냈다. 물동이 쪼가리 같은 것을 흘린 듯이 일부러 떨어뜨리고, 짐꾸러기 조각도 바람에 날리는 던져 두었다.

동일은 모든 행동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간절하게 느껴졌다.
이거통할까?”
적이 바보라고 생각 . 근데사람이 급하면, 눈에 보이는 것부터 믿게 되어 있어.”

철수는 자신의 회사에서 보았던 몇몇 상사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그리고 애굽 장군의 얼굴을 상상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금하나님 쪽에 있잖아.”

동일이 피식 웃었다.
입에서 나오니까, 낯설다.”
나도 그래.”

둘은 짧게 웃고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모래 위를 뛰기 시작했다.

얼마 , 먼지구름이 가까워졌다. 애굽군의 선발대가 협곡 초입에 도착했다.

장군! 흔적이 있습니다!”
병사가 외쳤다.

말에서 내린 장군이 모래 위를 내려다보았다. 새로 찍힌 발자국들, 짧게 끊어진 조각, 짚자루 흔적.

자들이여기로 도망간 모양이군.”
장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쪽은 막다른 골짜기입니다.”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함정일지도…”

함정이든 뭐든, 놈들은 도망칠 곳이 없다.”
장군은 코웃음을 쳤다.

순간, 장군의 뒤편 모래바람이 이상하게 말려 들어갔다. 부관은 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장군의 머릿속에, 자기 생각이 아닌 듯한 문장이 꽂혔다.
바다 앞에서 그들은 끝이다. 망설이면, 네가 패배자가 된다.’

장군은 부관을 노려봤다.
겁먹었나?”
그는 냉소했다.
저들은 노예다. 도망치다 지쳐 쓰러질 것이다.”

말이 떨어질 , 장군의 눈동자 안쪽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순간 결정은 인간의 판단을 넘어섰다.

주력은 뒤에서 그대로 밀고 오게 하고, 선발대는 협곡으로 들어간다.
저들이 숨어 있다면일망타진이다.”

명령이 떨어졌다. 병거 대와 기마병들이 협곡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멀리, 바위 뒤에 숨어 광경을 지켜보던 철수와 동일은 숨을 죽였다.

반은 성공이네.”
철수가 낮게 말했다.
최소한 선발대는 이쪽으로 빠졌다.”

근데주력은?”
동일의 불안한 눈빛에 철수가 SIMON 다시 확인했다. 붉은 점들의 상당수가 여전히 이스라엘 진영 쪽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속일 없었나…”
철수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그래도속도는 느려졌다. 조금은시간을 셈이지.”

 

이스라엘 진영에 다시 돌아왔을 , 이미 해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불평은 거세졌다.

모세는 어디 있느냐!”
우릴 여기서 몰살당하게 셈이냐!”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노인들.

바다는 여전히 앞을 막고 있고, 뒤에서는 북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점점 커져 오고 있었다.

소리 사이로, 모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백성들 앞으로 나와 지팡이를 짚고 섰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의 음성은 떨렸지만, 떨림 안에 이상한 힘이 있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철수와 동일은 사람들 틈에 섞여 그를 바라보았다. 흰머리와 수염이 바람이 흔들리고 그가 가끔 들어 올리는 그의 소매자락 사이로 그의 강인한 근육이 보였다.

너희가 오늘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모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의 마지막 말은 기도로 이어졌다. 그의 입술은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철수는 얼굴에서 땅의 어떤 지도자보다 부담과 고독을 보았다.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

그는 자신을 떠올렸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 개발한 국방 프로젝트의 책임자. 정책과 돈과 군인의 압박 속에서 혼자 밤샘하던 밤들.

모세랑조금은 같은 생각을 가졌었을까.

생각이 스치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저만치 떨어져 있던 모세가 철수를 쳐다보며 외친다.
그대도 오늘 여호와의 손길을 있으리라~”

모세의 시선을 느낀 철수가 몸을 움추리자 모세가 다시 한번 소리친다.
이제 여호와께서 바람의 머리를 꺼내신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바다 쪽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어왔다.

철수야…”
동일이 그의 팔을 잡았다.
느껴져…?”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풍이다. 강해지고 있어.”

드디어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내밀었다.

순간, 공기 자체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파도가 기묘하게 양쪽으로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물이 밀려나며 한가운데에 검은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놀람과 두려움, 경외가 섞인 비명.

철수야!”
동일이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진짜야진짜 갈라진다!”

철수는 입을 다물 없었다. SIMON 화면에서도 바다 가운데가 서서히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도 위의 부분을 수학적으로 도려낸 것처럼.

이건어떤 논리로도설명할 수가 없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동안 나는
모든 계산하고
예측하고
컨트롤할 있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지금 순간,
내가 있는
그저
놀라며 바라보는 것뿐이다.

모세가 외쳤다.
앞으로 나아가라!”

바다 한가운데, 마른 길이 보였다. 처음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가장 앞줄에 있던 사람이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뒤로, 번째, 번째, 점점 많은 사람들이 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벽은 거대한 푸른 장막처럼 양쪽에 있었다. 사이로 걷는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기적의 경계선 같았다.

우리도 가자.”
동일이 말했다.
당연하지.”
철수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기적의 통로로 들어갔다.

발밑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물이 빠져나간 듯한 젖은 흔적이 있었지만,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울고, 어른들이 기도하며 걷고, 누군가는 계속 뒤를 돌아봤다. 뒤쪽, 모래언덕 위에 먼지구름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애굽 군대가 드디어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저건무슨 마술이냐!”
애굽 장군이 소리쳤다.

 

장군의 어깨 뒤로, 잠깐.  아주 잠깐사람이 아닌 그림자가 지나갔다. 병사 하나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자리에 있는 모래바람뿐이었다.

그리고 장군의 마음속에 하나의 문장이 꽂혔다.
길은 함정이 아니다. 저들은 두려움에 만들어낸 틈이다. 지금 들어가면, 너는 영웅이다.’

병사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장군의 명령은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
그들을 추격하라! 길로 들어가라! 오늘 끝장을 본다!”

병거들이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철수는 걷다가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SIMON 전례 없는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었다. 양쪽의 물벽, 사이로 들어오는 이스라엘 무리,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는 병거들. 붉은 점들이 푸른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이거진짜 아찔하다…”
철수가 중얼거렸다.

철수야, 빨리 !”
동일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가 뒤처지면, 같이 휩쓸릴 있다!”

사람은 다시 앞으로 달렸다. 아이를 안은 여인을 부축해서 같이 뛰게 주고, 넘어진 늙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통로를 가로질렀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반대편 모래사장이 눈앞에 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이 벌써 건너편에 도착해 있었다. 모세는 여전히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팡이를 그의 손은 떨렸지만, 눈빛에는 어떤 이상한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마지막 명이 통로를 빠져나오자, 모세는 지팡이를 다시 들었다. 애굽 군대는 이미 바다 가운데 한가운데까지 들어와 있었다. 철수는 SIMON 화면에서 붉은 점들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있었다. 지금이다!

여호와여…”
동일이 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제판단하옵소서…”

모세의 지팡이가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졌다가 다시 바다 쪽으로 휘둘러졌다.

순간.  바람의 방향이 또다시 바뀌었다.
양쪽에서 버티고 있던 물벽이 거대한 포효와 함께 중앙을 향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애굽 군인들의 비명.
병거 부서지는 소리.
물에 삼켜지는 말들의 울부짖음.
모든 것이 번에 들려왔다.

철수는 숨을 멈췄다. SIMON 화면에서는 붉은 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뒤에서부터, 앞으로.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들을 지워나가는 것처럼.

이게심판이구나.”
동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거대한 물줄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앞에는 끝없는 바다만 남았다. 바다를 보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울음은 감사의 찬송이 되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소고를 들고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 숱한 눈물과 상실의 위에 세워진 승리의 찬양.

한가운데서, 철수와 동일은 조용히 있었다.

우리가…”
철수가 말했다.
얼마나 도운 걸까?”

모르겠다.”
동일이 솔직하게 말했다.
선발대를 조금 헤매게 하고, 조금 늦게 도착하게 정도겠지. 근데결국 바다를 여시고 닫으신 그분이셨잖아.”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조금의 시간 벌기.  조금의 혼란. 나머지는…”

그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없는 영역이지.”

동일은 바다와 모세와 사람들을 번갈아 보다가, 철수의 옆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가 괜한 일을 아니라면,
우리가 작은 행동들도
당신의 계획 속에서 쓰이게 주세요.
그리고
우리를 계속,
당신 편에 있게 주세요.

그때였다. 바람이 잠시 잦아들었다.

순간, 철수는 아주 익숙한 서늘함을 다시 느꼈다. 마치 승리의 찬양이 올라가는 틈을
누군가가 다음엔 찢어놓겠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돌아보면아무것도 없다.
항상 그랬다.

철수가 고개를 숙였다. 정체불명의 책이 스스로 펼쳐지고 있었다. 페이지 한가운데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글자가 떠올랐다.

NEXT COORDINATE:
JOSHUA / JERICHO

여리고…”
동일이 이름을 불렀다.
벌써?”

철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쉬었다 가면 되나…”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동일이 웃어 보였다.
나그네 인생.”

사람은 여전히 찬송과 춤이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았다.

철수는 그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시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기쁨, 믿음과 의심, 눈물과 춤이 뒤엉킨 사람들.

어쩌면…”
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시대가 달라도,
사람은 똑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빛이 다시 그들을 감쌌다. 홍해를 가른 바람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새로운 바람이 다른 시대, 다른 도시의 공기를 싣고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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